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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란 무엇인가?] 나는 너, 너는 나
    Orange(교육)/책 안 읽는 남자 2011. 7. 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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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가지 주제로 세상 들여다보기


    Orange 테마 - 책 읽어주는 남자










    나는 , 너는






    ■'무엇인가?'라는 단어의 이끌림



     




    때는 중학교 2학년 어느 여름이었다. 시루에서 피어나는 새하얀 수증기가 교실을 가득 휘감은 것 같은, 그야말로 찜통 속 더위로 앉아 있기가 힘든 그런 여름날이었다. 애석하게도 에어컨은 중3 교실과 교무실에만 있어서 우리 교실 양쪽에 있는 2대의 선풍기가 쉴세없이 바람을 부채질한다. 그 바람이 습하고 더워 창 밖에서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이 더 고마울 정도였다.


    그런 더위에 도덕 선생님은 시골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신다. 




    "여러분, 나란 무엇일까요?"




    나란 무엇인가? 라는 선생님의 말이 귓가에 이르자마자, '지금 배우고 있는 도덕도 잘 모르는데 나에 대해 어찌알겠어요!' 라는 볼멘소리가 입가에 멤돌았지만 평소에 질문도 안하는 '내성적인 나'였기에 내뱉지는 못했다. 다른 녀석들 얼굴에도 어이없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다들 더위에 지치고 어이없는 질문에 또 한번 지쳐서 반문할 기력도 없어보였다. 

     
    평소에 유머도 있으시고 자상하셔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선생님이지만,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더위에 나도 그만 넋을 잃고 멍하게 있었다.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러다 문득 '나는 선생님이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게 무슨 소리지, 왜 내가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는거지라고 되묻고 있는 찰나,



    "나는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은 나입니다... 이게 선생님이 생각하는 나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나란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세요."



    순간, 교실을 짓누르던 무더움을 잊을 만큼 오싹한 소름이 돋아버렸다. 내가 선생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니...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가에 대한 물음보다 답을 맞췄다는 기쁨에 며칠 동안 행복했었다. 비록 반친구들도 문제를 낸 선생님조차도 내가 답을 맞췄다는 것을 모르지만 말이다. 


    시간이 흘러 대학교 1학년, 교양과목 서평 과제 제출을 하루 앞두고 서둘러 도서관의 책들을 훑고 지나가던 중 내 시선을 한번에 사로잡은 책이 있었다. 바로 '역사란 무엇인가?'였다. 마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저절로 눈에 들어오듯이 운명과도 같은 첫만남이었다. 나도 모르게 나만 아는 '나란무엇인가'사건을 계기로 '무엇인가'라는 단어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같다. '무엇인가'라는 단어의 이끌림에 이끌려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무심코 집어든 책 한권, 나의 '이정표'가 되다. 






    처음엔 '무엇인가'라는 단어의 이끌림에 집어들었지만 에드워드 H. 카[각주:1]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호기심에 읽고 무심결에 읽는 만만한 책이 아니었다. 영국의 역사학자인 카가 캠브리지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을 편집하여 1961년에 출판한 것으로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와 서양사의 사건들이 경쟁이나 하듯이 곳곳에 담겨져 있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지식이라고는 학청시절에 배운 세계사와 국사가 전부였고, 그나마 배운 내용도 희미해져버려 수많은 퍼즐의 한 조각이 된지 오래였다. 그런 나에게 '역사란 무엇인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외계생명체 그 자체였지만 끝까지 읽는데 의미를 두고 읽었다.
     

    다음날, 책은 다 읽었지만 과제 마감까지 서평 제출을 못해 D학점을 받게되었다. 학점도 학점이지만 책을 다 읽었는데도 줄거리는 커녕 각 장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내가 독해력이 떨어지기도 하겠지만 한글로 번역된 문장의 의미가 확 다가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해서도 거의 백지상태였으니 애초부터 서평은 무리였고 제출했다 하더라도 엉터리라서 미제출 D학점과 비슷했을 것이다. 
     

    왜이리 역사적 지식이 없었을까 하는 그 분함에 그 해 겨울, 전공지망 1순위를 역사학과로 해버렸다. 그 때는 별다른 생각없이 지원했는데 남은 대학생활 3년을 역사 배우는 데 할애하게 되었고, 그것도 모자라서 대학원까지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기회가 되어 장학금을 받아 해외에서 편히(?) 공부하는 호사도 누리게 되었다. 현재 학생들과 함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에, '임용시험' 이란 끝이 안보이는 터널속에서 2년째 뚜벅뚜벅 걷고 있다.  


    '무엇인가'라는 단어에 이끌려 책을 집었지만 정작 그 단어 앞에 쓰여진 '역사'가 내 인생의 이정표가 되버릴 줄이야. 물론 이 책 하나 때문에 역사학을 전공하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머뭇거리겠지만, 역사에 관심이 없던 내게 '소개팅을 주선한 것은 이 책이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다.     

     

    ■50년 지난 지금도 이 책을 손에 들고 읽어야하는 이유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이 책을 읽어보니 참 많이 변했다.


    원서가 출간된지 올해로 꼭 50년이 지난 지금 역사를 배우는 사람들에겐 워낙에 유명한 책이 되었고 번역서들만 20여 종류가 나왔다. 그만큼 번역은 세련되게, 이해하기 쉽게 옮긴이의 친절한 주석까지 달려있다. 더욱이 영어 원서까지 함께 포함되어 있어 원서를 직접 읽고 생각할 수 있다. 


    책 자체가 변한 것도 변한 것이지만, 가장 많이 변한 것은 10년 전 이 책을 읽었던 '나'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옛 조상들의 말처럼 스쳐지나갔던 활자들이 의미있는 메시지로 내게 다가온다(때론 모르는게 약인 경우도 있다).


    '역사가가 연구하는 과거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도 현실에 살아 있는 과거이다.'[각주:2]  


    라는 콜링우드의 말은 역사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을 자극하게한다.  다시 말해 아무리 객관적인 역사적 사료가 있다하더라고 그것을 복원하는 역사가에 의해 얼마든지 역사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가령 어제 나에게 일어난 일 모두를 빼곡하게 일기장에 적었다고 가정해보자. 10년이 지나고 본인이 쓴 그 때의 일기를 애인에게 이야기해준다고 할때,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100% 이야기하겠는가? 몇시몇분에 일어나서 세수를 어떤 비누로 하고에서부터 몇시몇분에 어떤 이불을 덮고 텔레비전의 무슨 프로를 보다가 잠들었다까지. 그 사이에 있는 무수히 많은 일들을 애인에게 이야기한다는 것도, 애초에 일기장에 적는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더욱이 10년전 그때 일기장에는 다른 애인과 함께했던 핑크빛 추억들이 적혀있다면 아마도 당신은 그 때일을 솔직하게 전달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애인의 거센 추궁과 압력을 이겨내는 정직하고 힘센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기록이 있다하더라도 전달자에 의해 의해 선택되고(또는 버려지고) 해석이 가미된 형태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기록이 역사적 사료라면 전달자는 역사가이며 이를 듣는 사람들은 독자 또는 청중이 된다. 따라서 역사가에 따라 같은 기록이라 하더라도 선택배제, 해석에 의해 역사적 사실은 카멜레온처럼 언제나 변화할 수 있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이렇듯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그동안 알아오고 믿어왔던 역사에 대한 생각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흔히 정치인들이 유행어처럼 내뱉는 '모든 것은 역사가 심판할 것이다.'라는 말이 본인들의 잘못을 무마시키기 위한 얇팍한 권모술수 임을 이 책을 통해 알게되었다. 이미 그 심판을 국민들이 엄중하게 내리고 그 잘못을 묻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동문서답을 한 것이다.




    ■나는 너, 너는 나






    이 책의 첫구절은 책의 제목과 같은 '역사는 무엇인가?'로 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은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로 마무리가 되어 있다. 



    흔히 E.H. 카 하면 유명한 명언이 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한 마디 말로 정의해버린다.  나는 여기에 모두가 천동설을 주장할 때 지동설을 제기한 코페르니쿠스에게 신세를 지고 저자의 말을 뒤집어서 생각해보았다. 실제로 책을 거꾸로 뒤집어보고 옆으로 눕혀보기도 하였지만 활자가 주는 의미는 변함이 없었다. 



    얼마 후 나는 저자가 알려준 선택과 배제, 그리고 해석을 역사가 아닌 저자의 책 자체에 시도하기로 했다. 우선 보통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본론 부분을 과감하게 배제하고, 저자가 책의 첫 구절로 쓴 '역사는 무엇인가?'와 마지막 구절로 쓴 '그래도 지구는 돈다.'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화승씨가 해석하여 옮긴 갈릴레이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 And yet it moves.'의 돈다(move)를 사전에 있는 '나아가다, 발전하다.'로 의역하였다.


    즉, 저자는 역사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그래도 그것(역사)은 발전한다.'로 해석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역사에 대한 해석은 모두 제 각각일 지언정 그 다양성에 의해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상기온으로 몸살을 앓는 지구, 부패와 돈으로 물든 정치, 개발의 빛과 그림자로 부의 축척을 누리는자, 가난으로 인한 굶주리는 자 등 여러 사회문제를 껴 안고 있는 우리지만, 얽힌 실타래를 하나 하나 풀어나가야하는 주체도 우리이다. 따라서 남의 일이 나의 일이요, 나의 일이 남의 일인 것처럼 서로 의지하고 돕는 홍익인간 정신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너, 너는 나'라는 생각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지만 이 책을 읽어본다면 해석하기에 따라 가능하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을 '아 같고 어 같다.'로 해석한다면 '나 = 너'라는 등식이 얼마든지 성립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남을 통해 나를 알고, 역사를 통해 우리를 알아가는 일들이  어렵더라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 어제오늘의 나를 알고 나아가 내일의 나를 가늠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다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손에 집어든다.





     


     

    1. 우리에겐 'E.H 카'라는 이름으로 익숙하다. [본문으로]
    2. 관념론 역사철학자 콜링우드(33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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