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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 시대 구분 논쟁
    Green(역사)/타자로 보는 한국사 2011. 5. 2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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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가지 주제로 세상 들여다보기

    Green 테마 - 타자로 보는 한국사




    한국사 시대 구분 논쟁


     01. 시대구분은 왜 필요한가?


     

     ▲2009년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발간된 중등 역사(상)교과서


    개인의 일생은 보통 유아기에서 시작되어 사회생활의 준비단계인 청소년기를 거치고 이후 청장년기를 지나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는 노년기라는 일련의 사이클로 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그 주요 대상으로 하는 역사라는 학문 역시 몇가지의 기준에 의해 단계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시대구분"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시대구분은 같은 시대의 전공자라 할지라도 그 역사학자의 관점과 역사인식에 따라서 서로 다르게 해석되는 분야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닌 견해의 차로 인한 것이라 한국사 논쟁에서 항상 "뜨거운 감자(Hot potato)" 로 불리고 있다.


    시대구분을 하는 의미는 역사가 단순하고 무의미한 사건들이 모인 시간의 집합체가 아니라 어떤 공통적인 원리에 의해 발전되어 왔으며 역사의 시대구분을 통해 보다 체계적이고 법칙적으로 한국사를 파악하는 데 있다.

    각 나라마다 지역적인 환경과 인문환경의 차이로 인해 역사의 발전 양상이 다르겠지만 시대구분을 통해 역사 경험을 합리적으로 분석하여 역사의 보편성을 확인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아울러 지금 현재의 위치를 종전의 역사흐름속에서 확인해보고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역사발전의 실천성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시대 구분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02. 한국사를 구분하는 대표적인 시대구분 기준 4가지




    한국사에 대한 시대 구분의 기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크게 본다면 왕조에 의한 구분, 특정 주제에 의한 구분, 시간의 원근에 의한 구분(현재를 기준), 마지막으로 사회구조 및 성격과 발전과정에 의한 구분이 있다.


    우선 첫번째로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왕조에 의한 구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마치 개인의 일생처럼 왕조가 흥기를 하고 성세를 거쳐 발전을 하다가 멸망으로 그 왕조의 생명이 다하게된다. 신라의 김씨 왕조에서 고려의 왕씨로 조선의 이씨로 바뀌듯이 왕조를 개창한 세력의 성이 바뀌게 되는데 이를 "역성혁명"이라고 한다.

    이러한 역성혁명은 그 왕조의 천운이 다되고 새 왕조가 하늘로부터 명을 받아 왕조를 개창한다는 천명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단순히 왕조의 변천에 따라 시대를 구분하는 것은 몇가지 문제점이 존재한다. 우선 한 왕조가 멸망하면 다른 왕조가 새로 권력을 창출함으로써 계속 반복되는 양상을 보이는 순환론적인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결국 왕조만 바뀌게 되었을 뿐 변한것은 없다는 역사 발전 의식이 결여되기 쉽다. 또한 다른 나라와 비교해봤을때 왕조의 성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보편성이 약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결국 기존의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정권이 교체되었기 때문에 기존세력과 이데올로기나 제도 운영에서 차별성이 있다는 점과 신분의 변동을 통해 새롭게 사회구조가 재편된다는 점, 아울러 이러한 변화로 인해 사회의 여러가지 제도들이 변화하게 된다는 점의 긍정적인 면이 있어 왕조에 의한 구분이 유효하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 구 대한교과서(주), 지금의 미래엔컬처그룹에서 나온 중등 역사교과서 (상)


     

     

     ▲ 이번 개정 교과서에서는 왕조별 시기구분을 주로사용하되   고대라는 표현도 사용한 점을 알 수 있다.



    두번째로 살펴볼 것은 특정 주제로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보통 민족의 흥망성쇠나 지배세력의 변천과정이라는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시대를 구분하곤 한다. 특히 故이기백 선생의 경우 지배세력의 변천과정을 통해 한국사의 시대를 구분한 바 있다. 특정 주제를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한국사를 그 주제에 포커스를 맞춰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당시 지배세력들의 변천을 살펴봄으로써 "시대정신"과 권력의 이동, 사회의 변천을 파악하기 용이하다.

    하지만 호족, 문벌귀족, 무신세력, 권문세족, 신진사대부, 사림세력 등 지배세력의 변천과정에 치우치게 된다면 당시 사회를 지배한 엘리트들의 역할만 부각시켜 결국 민중의 역사를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무시하기 어렵다.



    세번째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를 기준으로 시간의 멀고 가까움에 의해, 즉 시간의 원근에 의해 구분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흔히사용하고 있는 개념으로 고대, 중세, 근대로 구분하는 3분법에서 경우에 따라 근세와 현대를 추가하여 5분법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구분 방법은 시간적 변화과정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역사가 일정한 발전 단계를 거치고 있다는 설명에 유용하다. 또한 고대, 중세, 근대는 한국사 뿐만 아니라 서양사와 동양사에서도 널리 적용될 수 있는 구분법으로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양의 고대와 중세, 근대가 한국사의 고대, 중세, 근대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각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다르며 그 시기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3분법에 의한 구분이 자칫 한국사를 비롯 다른 나라의 역사적 고유성을 훼손하는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어 주의가 필요한 구분법이다. 그러나 역사를 이해하고 학습할 때 한국사를 비롯 세계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가장 유효한 방법이기 때문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구조 및 성격과 발전과정에 따른 시대구분방법이다. 가령 노예제를 거쳐 봉건제를 지나 자본제로 이른다는 마르크스의 사회경제사가들의 구분법이 여기에 속한다. 사회의 생산방식과 분배방식에 의한 구조를 파악하고 시대별로 적용하여 발전하는 모습이 다르다는 시각으로 시대의 구별이 가장 뚜렷한 시대구분법이기도 하다.



     03. 삼분법을 기준으로한 한국사의 시기구분 논쟁



    앞서 설명한 4가지의 주제 중 학자마다 견해차이가 가장 큰 것은 시간의 원근에 의한 구분, 다시 말해 고대, 중세, 근대의 삼분법에 의한 구분이다. 이는 각 학자들의 견해차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데 여기서는 주요 논쟁을 중심으로 원시부터 고대, 중세사회, 근대사회의 시기구분에 대한 논쟁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로부터 가장 먼 과거인 원시, 고대사회는 인류의 출현과 함께 그 시작을 같이한다. 다만 문자의 사용이 없던 시기에는 문헌자료로 당시 사회상을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고고학의 힘을 빌려 대부분 유적, 유물 등에 의존해 그 실체를 파악하려 노력한다. 때문에 듣는 이로 하여금 "막연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말을,," 등의 이야기를 듣기 쉽지만 콜롬부스의 달걀 세우기 처럼 연구자들이 내놓은 견해들은 논리적인 방법에 의한 나름의 학문적인 결과의 소산이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TiP  문자의 사용을 기준으로 시기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데 문자 이전의 시기를 역사이전 시대, 즉 선사시대라고 한다. 문자를 사용한 시기는 역사시대로 구별하고 있다. 보통 한반도에서의 역사시대는 고조선이 활약했던 청동기시대부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자를 사용하지 않던 아득히 먼 옛날을 우리는 보통
    원시시대라고 한다. 이러한 시기들의 구분은 당시 주로 사용했던 도구에 의해 구분하는데 우리가 익히들어 알고 있는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가 바로 그것이다. 원시시대를 도구로 구분하는 것 자체에는 이견이 없으나 그 시기를 상정하는 문제는 고고학계의 중요한 논쟁거리중 하나이다. 필자의 전공이 역사이기 때문에 고고학의 영역에 대해 자세히 논하기는 어려우니 일반적인 시기만 언급하는 선에서 원시시대는 마무리하겠다.

    구석기는 약 70만년전을 시작으로 전개가 되는데 약 1만년을 전후로 하여 그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 곧바로 신석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약 2~3천년의 공백기간 이후인 B.C 6000년경(또는 B.C 8000년전) 신석기가 시작되게 된다. 과거 역사교과서에서 중석기라고 부른 시기가 구석기와 신석기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 개념으로 소개된바 있으나 현재 학계에서는 그 뚜렷한 변화가 없어 중석기 개념 설정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후 요하유역지역에서는 B.C 1600년경, 한반도에서는 B.C 1000년경 부터 청동기가 시작되고 B.C 300년 부터 2차 청동기 시대 또는 초기철기시대를 거치게 된다.


    이제 고대사회의 시기 구분에 대한 논쟁으로 초점을 옮겨보자. 고대 시기를 구분할 때 논쟁의 중심으로 부각된 주제가 바로 국가의 성립인데, 시기적으로는 고조선의 성립시기를 고대로 보는 견해부터 삼국시대의 초기를 고대로 보는 견해까지 약 1000년의 차이가 있어 편차가 큰 편이다. 

    따라서 그 편차만큼 논의의 전개방식도 다양하지만 이들 모두 공통적인 관심사는 국가의 성립에 주목하였다는 점이다. 1960년대 Morgan의 견해를 통해 부족국가설 등장을 시작으로 성읍국가설, 군장국가설, 북한학계의 주장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부족국가설은 원시공동체 사회의 씨족사회에서 부족이 국가를 이루는 부족국가 -> 부족연맹체국가 -> 고대국가 순으로 국가가 성립되었다는 주장이다. Weber의 학설을 차용한 성읍국가설은 씨족공동체사회->성을 기본 단위로 여러 읍이 모여 성립된 성읍국가->연매왕국->귀족국가의 단계를 거쳐 국가가 성립되었다는 견해이다. Service의 군장국가설은 무리를 지어 이뤄진 군사회-> 부족사회->군장사회(군장국가)->초기국가의 단계로 국가가 성립되었다는 견해이다.

    얼핏보면 서로 다른것 같지만 결국 용어의 차이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한 문제로 국가의 영역이 확대되어 가는 과정은 서로 비슷한 수준이다.  이에 반해 북한의 역사학계의 인식은 사뭇 다른데 원시사회를 지나 고조선, 부여, 진국과 같은 고대노예제 사회를 거쳐 삼국시대에 와서는 중세 봉건사회로 이르게 되고 1860년대에는 근대사회가 된다는 사회경제사에 입각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다룬 여러 견해들은 사료의 태부족과 있다 하더라도 중국측에 기록된 제한적인 사료로 인해 진척이 어려운 분야이다. 

     부족국가설(Morgan) 씨족사회  부족국가  부족연맹체국가  고대국가 
     성읍국가설(Weber) 씨족공동체사회  성읍국가  연맹왕국  귀족국가 
     군장국가설(Service) 군사회  부족사회  군장사회(국가)  초기국가 
     분한학계 원시사회  고대노예제사회  중세봉건제사회  근대사회

     

    다음으로 한국의 시대구분에서 초미의 관심사며 가장 논쟁이 뜨거운 중세사회에 대해 살펴보자. 중세를 어떤 관점에서 파악하느냐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나뉘고 있는데 중세를 고려초기로 보는 설과 조선시대로 보는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로 보는 설이 있다.

    우선 고려초기를 중세로 보는 견해는 지배체제의 성격에 주목한 결과로 사회 인류학의 관점이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대의 지배체제의 성격은 7세대 공동체를 중심으로 친족공동체에 기초하여 족장 세력이 중심이되어 정치를 이끌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다가 고려 성종 때 5세대 공동체로 그 범위가 축소가 되고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적극 수용하여 유교적 정치이념 체제를 마련하게 된다. 이후 국왕을 중심으로 관료제 사회가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기존 족장의 정치적 지배력이 왕에 의해 제한을 받게되고 결국 소멸하게 됨으로써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다.

    둘째 조선시대를 중세사회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는 소비하고 남은 잉여 생산물의 수취방식에 주목한 결과로서 사회경제사 관점에 의해 제기된 것이다. 잉여생산물을 수취하는 방식은 바로 부세제도와 깊은 관련이 있는데 고려전기까지는 세금의 부과 기준으로 사람의 머리 수 즉 인정(人丁)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고대로 보고 있다. 반면 고려 후기에 이르러 개인의 토지 소유가 증가하게 되어 조선시대에는 인정이 아니라 소유하고 있는 토지(田丁)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게 된다고 보고 이를 중세사회의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다시말하면 고려시대전까지는 식구수가 많으면 세금을 많이 납부한 반면에 조선시대에 이르러 사람의 수보다 토지의 보유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부세제도가 변화한 것을 시대 구분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제기되어 주목을 받고 있는 통일신라설에 대해 살펴본다. 통일신라는 중세의 시작으로 보는 이 견해는 토지소유자와 직접 생산자 사이의 생산관계에 주목하여 시대를 구분하고 있다. 가령 삼국 시대 말기는 귀족등의 대토지 소유자가 하호(노예)에게 토지를 주어 직접 경작하게 하는데 귀족과 하호의 관계가 인신적으로 예속되어 있다 하여 고대 노예제 사회로 보는 견해이다. 그 증거로 귀족이 죽어 무덤을 만들때 사람을 함께 묻는 풍습인 순장이 있었는데 많을때에는 백여명을 함께 묻었으므로 귀족과 하호의 관계는 인신적으로 예속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통일신라로 접어들면서 순장 풍습의 금지가 정착이 되고(통일신라 이전 지증왕의 순장금지가 있었음), 토지를 소유한 지주(전주)와 이를 경작하는 전호(전객)들의 관계가 인신적 예속인 아닌 서양의 농노(콜로누스 ; 자유농민과 노예의 중간)와 유사하기 때문에 봉건적 지주전호제가 성립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통일신라 중세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준농노인 전호와 전객의 발생을 강조하면서 자영농제가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통일신라를 중세로 보고 있다.   

    특히 통일신라의 중세설은 신문왕대에 이뤄진 관료제의 시행과 불교와 유교사상의 정착, 사적토지 소유에 기반을 둔 지주제의 형성과 신분제 확립, 중앙집권국가 확립을 설명해주는 면이 있어 유효한 설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근대사회에 대한 시기 논쟁을 살펴보자.

    첫째로 근대를 초기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성립을 강조하여 18세기 부터 근대로 보는 견해가 있다.

    둘째는 1860년을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인데 근대사회를 지향하는 반침략 운동과 반봉건 운동이 서로 결합되어 맹아적인 형태로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고종을 왕으로 즉위시킨 흥선대원군이 1863년부터 10여년간 척사운동의 정치활동과 개혁운동을 펴는 것과 관련이 있다. 

    셋째는 1876년을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인데 일본의 운요호 사건으로 강화도 조약을 맺은 1976년을 시작으로 조선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어 자본주의가 성장하였다고 보는 견해이다. 또한 개항을 계기로 위정척사파와 개화파의 대립과 외세의 침략에 맞서 민족국가 수립 운동이 전개됨을 특징으로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1894년을 근대로 보는 견해인데 정부 주도의 갑오개혁에 큰 의미를 둔 시기 구분방법이다. 갑오개혁을 통해 자본주의 발전을 촉진을 목표로하는 국가권력이 성립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04. 역사의 시기구분은 그 시대의 패러다임이다.




    지금까지 간략하게나마 한국사의 시대구분에 대한 여러 논쟁을 소개했다. 사실 역사를 공부할때 각 시대의 역사적 사실과 전개에 중점을 둔 나머지 한국사의 시대 구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역사적 사실이 개별적이고 고유한 특성을 지님으로 하나의 틀로 시대를 정확히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적어도 그 시대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틀이 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울러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어떻게 논의되었는가를 알게되면 한국사의 여러 국가들의 특성과 변화과정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으며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에 의해 다양하게 한국사가 해석될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해석에 따라 같은 사건도 180도 달라지는 역사의 학문적 특성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대학의 고등교육과정에서 한국사에 대한 시대구분을 함께 고민해보고 배워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시기 구분은 그 시대를 보는 우리들의 페러다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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